역시 교육의 이해 과목 들으면서 횡설수설한 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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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치 아담스’는 실존 인물인 ‘헌터 아담스’를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그는 사회부적응으로 자살기도까지 하게 되고,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그는 비튼 산업 회장이었던 아더 멘델슨을 만나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환자들과 교류를 하며, 도움을 주는 것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우치게 된다.
2년 후 페치 아담스는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는 환자들과 교류를 하며, 병이 아닌 환자들과 만나기를 원하였다. 다른 의대생들이 책에 있는 내용을 외우고 시험을 볼 때, 그는 환자와 직접 만나 교류 하기를 원한다. 본래 3학년부터 환자를 만나는 것이 허용되나, 그는 1학년 때부터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교류를 하였다. 그의 행동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그의 신념을 계속 보여주었고, 친구들이 하나 둘 그의 의견을 동감하게 되었다.
그는 무료 진료소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환자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이 의사가 되는 이샹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다 그의 연인이었던 캐런이 그의 의료방침을 따르다가 죽는 사고가 발생을 하고, 학교에서는 그에게 퇴학을 명령하는 등 그에게 시련이 다가온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에게 닥쳐온 시련을 이겨내고, 의사가 되어 그가 꿈꾸었던 의료활동으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많은 의사들도 그 활동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교육학에 중요한 삼요소가 가르치는 사람, 가르침을 받는 사람 그리고 학습소재라고 할 때, 영화 ‘페치아담스’는 크게 3가지의 교육학적 구조를 가진다. 첫째는 의대교수와 의대생 그리고 의술이라는 학습소재이다. 둘째는 의사와 환자와 병이라는 학습소재이다. 의사가 병의 완치를 목적으로 환자에게 주도적인 지시를 하는 입장으로 볼 때, 의사를 교육자, 환자를 피교육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는 맞지만, 학습소재로 병이 아닌 ‘인간’을 가진 경우다. 이것이 페치가 환자와 가지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는 환자와 환자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환자가 의사가 되기도 하며, 의사가 환자가 되기도 한다. 이 세가지 구조 하에서 이 영화를 교육학적으로 분석을 해보자.
먼저 의대교수와 의대생 그리고 의술이라는 학습소재를 가지고 이야기 해보자. 의술을 배우는 것은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생은 의술을 배우는데 가장 적합하다가 판단된 정해진 경로를 따르게 되다. 의대생이나 의대교수들이나 이러한 전통에 의문은 없으며, 이 전통을 따르는 것이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아담스가 들어오면서 이러한 전통은 위협을 받게 된다. 의술을 배우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이 되었던 전통의 과정은 사실 의술의 가장 핵심인 인간에 대한 사랑은 빠진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죽어버린 과정은 단지 의사와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분하여 의사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현재의 제도권 교육이 인간이라는 핵심은 빠진 채,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능인만을 양성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해준다. 또한 제도권 교육이 새로운 신분을 가르는 질서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한편으로 교육은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 학습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에 생각을 해보게 한다.
그러한 전통은 깨어지고, 개선 될 수 있는가? 페치의 의대수업과정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페치는 먼저 의사로서 가져야 하는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각이 있었다. 이러한 자각 하에서 그는 기존의 룰을 파괴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페치의 그러한 행위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게 된다. 페치는 단지 전통을 깨는 이단아가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가야 할 목표는 무엇이며,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제도화된 죽어버린 의사로의 입문과정이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다. 만약 페치가 그러한 신념과 의사로서의 근본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전통을 파괴하려고 하였다면, 페치는 그 사회에서 퇴출되었을 뿐일 것이다. 이는 잘못되고 죽은 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합의하는 근본을 다시 세움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교육으로 생각해본다면, 현재 제도권 교육에서 교육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분명한 제시와 이를 추구하려는 시도를 통해 기능인만을 양성하는 제도권 교육이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전통적인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페치와 환자와의 관계의 비교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 그리고 학습소재 또는 학습목표의 차이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페치와 환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교육이 일방적인 전달의 과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일방적인 전달의 관계가 아닌 상호 교류의 관계가 될 때 기능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이 가능하다. 교육자 역시 완전한 인간이 아닌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상호교류를 통해 교육자의 부족한 부분 역시 채워지게 되며,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목표가 다르며, 학습 소재가 달라지게 된다. 전통적인 관계는 기능적으로 보기 때문에 병의 치료, 죽음에 대한 회피가 목표가 되며, 그래서 병 자체가 관심대상이 된다. 반면 페치는 병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성의 상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 죽음을 인간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승화할 것인지가 목표가 된다. 질병의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병의 치료라는 구실로,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여서는 안되며, 질병이 있다고 하여 인간의 삶의 질이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치의 경우는 관심 대상(학습소재)는 인간 자체가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화 ‘페치 아담스’는 교육의 관점으로 볼 때 여러가지를 시사해 준다. 의대 수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교육은 상당부분 제도화 되고 죽어버린 교육이 되고 있다. 학생 각자의 인격적인 존중 보다 시험성적 위주의 학습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학생만 불행해지는 길이 아니라 교사 역시 불행해지는 길이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박제화된 의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학생의 인격이 존중 받지 못함으로 상호 교류가 되지 않으며, 결국 교사의 인격 역시 존중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상호 교류를 통한 서로의 인격 존중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진정한 교육이며,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깨닫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삼요소를 교육자, 피교육자, 학습소재라고 하였는데, 앞서 본 것처럼 학습목표가 더 중요하며 학습목표에 따라 학습소재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의 삼요소를 교육자, 피교육자, 학습목표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학습소재가 같더라도 학습목표가 다르면 그 교육의 내용 역시 상당부분 달라질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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